거주하는 것은 보호되어진 장소에서 평화롭게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소는 곧 집을 의미한다. 집은 세계의 중심, 태모의 보호자적인 측면, 짐 싸는 일을 가리키며, 보호의 상징이다. 부족 종교의 예배당이나 움막, 티피, 오두막은 우주의 중심, 우리들의 세계, 우주를 나타낸다. 통과의례에서 집은 자궁퇴행, 즉 다시 살아나게 될 신생에 앞서 암흑으로 떨어짐을 나타낸다.

집은 하나의 세계 모형이다. 하늘은 중심 기둥에 의해 떠받쳐지는 광대한 천막으로 간주된다. 천막의 지주 혹은 그 집의 중심 기둥은 세계의 기둥과 동일시되며, 또 그렇게 일컬어진다. 이 중심축은 혹은 기둥은 중요한 제의적 역할을 담당한다. 최고의 천신(天神)을 위한 공희(供犧)가 그 기둥 아래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사이에서도 동일한 상징이 보존돼 왔지만, 여기서는 중앙에 기둥을 세운 원추형 지붕의 주거 양식이 유르트(yurt)에 의해 대치됐으므로, 기둥의 신화적·제의적 기능은 연기의 배출을 위해 터놓은 위쪽의 출구에로 전이되기에 이르렀다. 인도처럼 고도로 발달한 문화를 가진 곳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발견된다. 석공이 최초의 돌을 놓기 전에 천문학자가 그것을 위치시켜야 할 장소를 그들에게 보여 주는데, 그 장소는 세계를 떠받치는 뱀 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도시나 성전과 꼭 마찬가지로 집은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우주론적 상징 혹은 제식에 의해 성화된다. 어떤 곳에 정주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 그 자체에 관련된 진지한 결단을 나타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그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것을 유지하며, 새롭게 하는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거주지가 가볍게 변경될 수 없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쉽게 버릴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온다. 집은 하나의 대상, ‘들어가서 사는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신들의 모범적 창조 즉 우주 창조를 모방함으로써 그 자신을 위해 건설한 우주인 것이다.

집은 세계의 모형(imago mundi)이면서 또한 인간 신체의 재현이기도 한 까닭에 제의와 신화에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상고시대의 중국, 에트루리아 문화의 경우 관(棺)은 가옥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위쪽으로 열인 출구가 있는데,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들어왔다가 떠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이 관-가옥 가운데 어떤 것은 죽은 자의 새로운 신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적인 조상이 온 것도 역시 집으로부터였다. 그리고 태양이 다음날 아침에 다시 떠오르기 위하여 밤이 되면 숨는 곳도 이 같은 집-관-모자 속이다.

주거 형태가 여러 가지로 다르고 집이라기보다는 천막(yurt)체 거주하고 있을 때에는 중앙 기둥의 신화 종교적 기능은 연기가 빠져나가는 지붕의 구멍 역할을 한다. 공희를 바칠 때에는 그 천막의 중앙에 나무를 하나 갖다 놓는데, 그 나무 꼭대기는 그 구멍을 통과하게 했다. 가지가 일곱 개인 공희의 나무는 7층의 하늘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집은 우주와 대응하며, 또 한편으로 연기가 나가는 개구부는 북극성 바로 밑에 있어서 집은 세계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텐트의 꼭대기에 있는 구멍은 북극성을 향해 있는데, 그것은 우주의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웜홀(worm hole) 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한국건설신문 오피니언 기고 http://www.conslo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558